행동경제학

배달 구독제, 왜 끊기가 어려울까? 행동경제학으로 설명해보자.

moncherhee 2025. 7. 7. 12:17

구독은 왜 해지하지 않고 유지되는가

  이번 달엔 배달도 안 시켰는데 왜 또 자동결제가 됐지?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땡겨요 같은 배달앱은 최근 ‘배달 구독제’를 핵심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월 4,900원에서 5,900원 사이의 구독료를 내면 무료 배달, 할인 쿠폰, 포인트 적립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다. 처음에는 ‘한두 번만 써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정작 몇 달이 지나면 자주 이용하지 않음에도 계속 결제가 되고 있다. 많은 사용자들이 해지를 미루고, 무의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단순히 귀찮아서일까? 행동경제학은 이 소비 패턴의 이면에 작동하는 여러 심리적 원인을 설명해준다.

배달 구독제, 왜 끊기가 어려울까? 행동경제학으로 설명

자동 갱신의 덫: 기본값이 만든 유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기본값 편향이다. 대부분의 배달 구독 서비스는 자동 갱신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둔다. 이용자가 해지를 누르지 않으면 매달 그대로 결제된다. 해지를 위해선 앱을 열고, 메뉴를 찾아 들어가서 버튼을 눌러야 하는 일련의 행동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사람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자동으로 미루는 성향이 있다. 그 결과 구독은 계속 이어지고, 사용자는 ‘귀찮으니까 그냥 둔다’는 선택을 반복한다.

놓치기 싫은 심리: 손실 회피

  그다음 작용하는 심리는 손실 회피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 배달 구독제를 해지하려 할 때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번 달에 한 번이라도 시키면 본전은 뽑는 거잖아. 이 혜택을 끊는 건 마치 내가 기회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만으로도 해지 버튼을 누르기 어려워진다.

쓴 돈이 아까워서 더 쓴다: 몰입 비용

  몰입 비용, 즉 매몰 비용도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미 몇 달간 구독료를 냈다면, 지금 해지하면 그동안 쓴 돈이 아깝게 느껴진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돈은 이미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 지출을 계속 의식하며 현재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 이로 인해 '지금이라도 계속 써야 덜 손해 같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이 심리는 구독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

할인에 속다: 앵커링 효과

  앵커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배달앱은 구독 사용자에게 ‘정가 3,000원짜리 배달이 무료’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때 사용자는 실제로 할인받은 금액이 없음에도 ‘3,000원을 절약했다’고 느낀다. 초기 제시된 금액이 머릿속에 기준점으로 박히고, 이후 판단을 왜곡하게 만든다. 그 결과 구독 서비스를 통해 나는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게 된다.

남들도 하니까 하는 심리: 사회적 증거

  사회적 증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달앱은 누적 구독자 수, 이용 후기, 실시간 사용량 같은 데이터를 계속 보여준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나도 써야 할 것 같다’는 심리를 느낀다. 특히 2030세대는 온라인 플랫폼의 흐름에 민감하고, 주류 소비에 동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때 구독 여부는 단순한 실용이 아니라 소속감의 문제로 확장된다. ‘남들 다 쓰는데 나만 안 쓰면 손해 같아’라는 감정이 해지를 더 어렵게 만든다.

해지하면 불안한 이유: 놓침에 대한 두려움

  FOMO, 즉 놓칠까 봐 생기는 불안도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시킨다. 배달앱은 종종 다음 달에 혜택이 바뀔 수 있다는 식의 문구를 보여준다. 지금 해지하면 나중에 이 혜택은 못 쓸지도 몰라 라는 생각은 강한 심리적 압박이 된다. 실사용이 줄었음에도 일단 유지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미래의 기회를 상상하며 현재 결정을 미루는 경향은 매우 흔하다.

딱히 나쁘지 않아서 유지된다: 현상 유지 편향

  가장 결정적인 심리는 바로 현상 유지 편향이다. 사람들이 ‘딱히 해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때, 사실 그 말 안에는 ‘굳이 신경 쓰기 싫다’는 감정이 숨어 있다. 변화가 없으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배달앱 구독 서비스는 해지가 복잡하지 않아도, ‘지금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계속 유지된다. 앱을 열면 여전히 혜택 배너가 있고, 계정엔 구독이 표시돼 있다. 이 작은 시각적 요소조차 해지를 방해하는 심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결제보다 어려운 그만하기의 기술

  우리는 구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선택의 구조 안에서 유도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배달앱 구독제는 사용자를 강제로 묶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갱신, 혜택 메시지, 할인의 착시, 놓칠까 봐 생기는 불안, 귀찮음과 습관이라는 감정들이 어우러지며 사용자 스스로 계속 유지를 택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행동경제학이 설명하는 비합리적 소비의 전형이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판단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이 서비스를 정말 필요해서 구독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해지하는 게 귀찮아서 두고 있는 걸까. 소비가 더 똑똑해지는 첫걸음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흐름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결제보다 어려운 건, 멈추는 결정을 내리는 기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