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몰, 항공사, 카드사, 편의점, 주유소 등 다양한 곳에서 마일리지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일정 비율로 포인트를 적립받는다. 그런데 이 포인트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될 예정이라는 알림이 왔을 때,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마일리지 사용을 갑자기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걸 그냥 날려버려야 하나?”
“어떻게든 뭐라도 사야 손해가 아니지 않을까?”
이런 심리는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아니라 행동경제학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는 결과다. 이 글에서는 마일리지 소진 마케팅이 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지, 그 심리적 설계를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해본다.
소유 효과: 숫자가 아니라 ‘이미 내 것’이라는 착각
사람은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 가치가 심리적으로 커진다. 이 현상은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 불린다. 마일리지는 본질적으로 실물 화폐가 아니고, 특정 조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된 혜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적립된 마일리지를 ‘자신의 자산’처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2,000포인트가 적립되어 있다는 알림을 받으면, 그 숫자는 2,000원이 아니라 ‘내 돈 2,000원’처럼 인식된다. 이처럼 심리적으로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금액이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고 소멸된다는 메시지는 ‘돈을 잃는 것’과 같은 불쾌함을 유발하게 된다.
손실 회피: 쓰지 않으면 손해라는 감정
행동경제학에서 가장 강력한 심리 원리 중 하나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다. 같은 양의 이득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마일리지 소진 알림 메시지는 대부분 “○월 ○일 이후 소멸 예정”이라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 이 문장은 소비자에게 명확한 손실 시점을 제시한다. 이때 소비자는 아직 쓰지 않은 마일리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반응하게 되며, 설령 실제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도 “손해 보기 전에” 써야겠다는 충동이 생긴다.
실제로는 소비하지 않아도 아무런 피해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를 ‘날리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감정은 마케팅에서 매우 효과적인 구매 유도 장치가 된다.
몰입 비용: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
마일리지를 받기 위해 사용자는 일정한 소비를 해야 한다. 항공 마일리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비행기를 타야만 적립되고, 특정 카드로 결제하거나, 제휴 서비스를 이용해야만 포인트가 쌓인다.
이 과정은 소비자에게 몰입 비용(Sunk Cost Effect)을 형성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몰입 비용은 이미 투입한 노력과 자원이 회수되지 않더라도 결정을 바꾸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 작용이다.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많을수록 소비자는 그 포인트를 포기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 일부러 특정 브랜드를 이용하거나, 다른 선택지를 희생해왔다면, 그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않고 날리는 것은 ‘내가 했던 선택 전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소비자는 자신이 지출한 시간과 돈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일리지를 사용하면서 다시 소비를 유도당하게 된다.
희소성 프레이밍: ‘이번 달만 사용 가능’이라는 조급함
사람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혜택보다, 제한된 기간에만 쓸 수 있는 혜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때 작용하는 심리가 희소성 편향(Scarcity Bias)이다.
마일리지 소진 마케팅은 이 원리를 극대화한다. 알림 메시지에는 늘 시간 제한이 함께 온다. “이번 달까지”, “3일 남음”, “오늘 자정까지” 같은 문구는 소비자의 시간을 압축시키며 조급함을 유도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메시지가 오히려 소비자의 자율성을 줄이고, 강제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심리적 긴급 프레이밍’이라고 부르며, 마케팅에서 자주 활용되는 수법이다.
인지 부조화 회피: 어차피 쓸 거였으니 지금 쓰자는 정당화
마일리지를 사용하면 원래는 사지 않던 물건을 고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소비 행동이 일관되고 정당하다고 느껴야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만약 마일리지를 소진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했다면, 그 행동과 소비자의 가치 판단 사이에 불일치가 생긴다. 이럴 때 사람은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예를 들어 “이건 원래 살 생각은 없었지만, 어차피 공짜로 받은 포인트고, 잘 쓰면 되지”라는 자기 합리화가 발생한다. 이처럼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행위는 때로는 구매에 대한 죄책감을 줄여주는 기능까지 한다. 그리고 브랜드는 바로 이 인지 부조화 회피 기제를 활용해, 소비자의 마음속 저항을 줄이고 구매 전환을 부드럽게 만든다.
상태 유지 편향: 마일리지 구조 자체가 소비를 반복하게 만든다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사용하고 나면, 다시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 같은 브랜드나 같은 서비스에 재방문하게 된다. 이 패턴은 행동경제학에서 상태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익숙한 구조와 결정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깨는 데 심리적 저항을 느낀다. 마일리지 시스템은 이런 편향을 이용해 소비자를 반복적인 소비 구조 안에 머물도록 유도한다. 적립과 사용, 그리고 또다시 적립을 위한 소비가 연결되며, 소비자는 하나의 루틴에 빠지게 된다. 이때 소비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마일리지 시스템이라는 구조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자율성 착각: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유도된 행동
마일리지 마케팅은 겉으로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심리적 장치를 통해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자율성의 착각(Illusion of Choice)이라 부른다.
소비자는 “나는 포인트가 있으니까 이걸 산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 포인트 자체가 이미 브랜드에 의해 설정된 유도 도구다. 마일리지 유효기간, 소멸 알림, 상품 추천, 포인트 차감 조건 등은 모두 브랜드가 소비자 행동을 설계한 결과이며, 소비자는 그 안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느낄 뿐이다.
마일리지는 서비스가 아니라 소비의 구조다
마일리지는 단순한 보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 심리를 정밀하게 설계해 구매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시스템이다. 소유 효과, 손실 회피, 몰입 비용, 희소성 프레이밍, 인지 부조화 회피 등 다양한 행동경제학 이론이 마일리지 구조 안에 숨겨져 있으며, 소비자는 그 흐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브랜드는 마일리지를 통해 단순히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를 반복시키고, 선택의 흐름을 설계하고 있다. 마일리지 소진 마케팅은 결국 ‘혜택을 쓰게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 ‘소비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다음에 마일리지 소멸 알림을 받을 때, 잠시 멈춰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 이 소비는 정말 필요한 결정일까, 아니면 설계된 구조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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