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이 분석한 ‘AI 면접 피로감’과 자동화 거부 심리
2025년 상반기, AI 면접이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광범위하게 도입되며 취업준비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기술의 편리함에 대한 기대와 달리, 많은 응시자들은 오히려 AI 면접이 더 피로하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행동경제학은 이 현상을 '합리적 판단'이 아닌 '심리적 저항'의 결과로 해석한다. 이 글에서는 실제 뉴스와 통계를 바탕으로, AI 면접에 대한 피로감과 거부감의 이면을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살펴본다.
AI 면접 확대… 그러나 환영보다는 불신
2025년 6월 11일,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국내 주요 공기업의 AI 면접 도입률이 80%를 넘어섰다. 대기업에서도 롯데, LG, CJ, 포스코 등 주요 그룹이 비대면 AI 화상면접 시스템을 적극 도입 중이다. 이에 따라 응시자들은 자신의 표정, 말투, 시선, 음성톤까지 분석 대상이 되며, 그 결과에 따라 탈락 여부가 갈리게 된다. 그러나 기술의 효율성과는 별개로, 구직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2025년 6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2.8%가 “AI 면접이 일반 면접보다 더 긴장되고 불편하다”고 답했고, 65.3%는 “AI 면접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나는 AI가 싫다”는 감정적 거부감도 설문 응답에 다수 포함됐다. 이처럼 객관성과 공정성을 내세우는 기술이 오히려 불신을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경제학은 이 현상을 몇 가지 핵심 심리 효과로 설명한다.
통제의 환상: 인간은 '내가 조절하고 있다'는 감정이 필요하다
행동경제학의 대표 개념 중 하나인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스스로 조절 가능하다고 믿는 심리를 의미한다. 대면 면접에서는 말의 흐름, 표정, 질문에 대한 재치 있는 대응 등을 통해 응시자는 자신이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AI 면접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사라진다. 정해진 시간, 고정된 카메라, 미리 입력된 질문. 심지어 응시자의 표정이나 말투를 기계가 점수화한다. 이때 응시자는 ‘나의 진짜 장점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빠진다. 이는 자신의 통제력 상실로 인한 심리적 저항으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면접 자체에 피로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알고리즘 불신: 우리는 기계보다 사람을 더 믿는다
사람은 실제 정확도보다 ‘어떻게 판단했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AI 면접 결과가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인간적인 설명이 부족할 경우 사람들은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설명 가능성 편향(explainability bias)이다. 실제로 2025년 6월 14일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한전 AI 면접 탈락 경험자 A씨는 “AI가 왜 내가 불합격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피드백이라도 줬을 텐데, 기계는 결과만 알려주니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는 응답자가 공정성보다 설명받을 수 있다는 감정적 안정감을 우선시한다는 심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감정 회피 성향: 무표정 앞에서는 감정이 불안해진다
AI 면접에서 가장 흔히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어색함’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감정 피드백 결핍(Emotional Disconnection)이라고 부른다. 대면 면접에서는 상대방의 미소, 고개 끄덕임, 리액션 등에서 감정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I 면접은 무표정한 카메라, 기계 음성, 반응 없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응시자는 대화가 아닌 시험을 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서적 피로감이 훨씬 더 빨리 찾아온다. 이로 인해 응시자는 면접 자체보다 심리적 긴장을 다루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결국 “AI 면접은 사람보다 피곤하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현재 편향: 사람은 즉시 확인받고 싶어 한다
AI 면접의 또 다른 특징은 결과 발표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응시자가 모든 항목을 완료하고도, 그 결과가 며칠 후에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불확실성’에 피로감을 느낀다. 이런 심리는 행동경제학에서 현재 편향(Present Bias)으로 설명된다. 사람은 먼 미래의 이득보다 지금 당장의 안정감이나 정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즉시 피드백이 없는 상황은 기대보다는 불안을 키우게 되고, 이 역시 AI 면접에 대한 감정적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체성 위협: 기계가 나를 판단하는 불편함
AI 면접에 거부감을 느끼는 또 하나의 심리 요인은 ‘기계가 인간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저항’이다. 우리는 자신이 단순한 수치나 점수가 아닌 ‘개성 있는 존재’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AI는 개성보다 데이터의 일관성, 표준화된 언어 사용, 정해진 행동 패턴을 선호한다. 이런 시스템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협(threat to identity)으로 작용하며, “나는 충분히 매력적인 지원자인데, AI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감정을 유발한다. 결국 기술이 의도한 공정성은, 사람에게 비인간적 평가라는 느낌을 주며 피로감으로 연결된다.
기술이 만드는 불신: AI가 피로한 게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
AI 면접은 기술적 혁신인 동시에 심리적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구조다. 행동경제학은 이를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통제 욕구, 정서적 피드백, 즉각적 정보 요구가 AI 시스템과 충돌하면서 정신적 에너지 소모를 만든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효율적인 기술보다 나를 인정해주는 과정에 더 민감하다. AI 면접이 공정한 시스템이 되려면, 결과의 정확성뿐 아니라 사람이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