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으로 해석한 ‘하이브 AI 아이돌 프로젝트’에 열광하는 이유

moncherhee 2025. 7. 7. 08:58

  2025년 6월, 하이브는 버추얼 캐릭터 기반의 AI 아이돌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하며 또다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당 프로젝트는 단순히 3D 캐릭터에 목소리를 입히는 기존 버추얼 아이돌 개념을 넘어, 완전한 생성형 AI 기반으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팬들과 교감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실제 사람이 아닌 AI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MZ세대 팬덤은 기존 아이돌 못지않게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팬사인회 대신 AI 채팅, 라이브 스트리밍, 굿즈 구매에 몰입하고 있다. 일부는 “기계에 열광하는 것이냐”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소비자들은 그런 구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친밀하다”는 반응마저 나온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면에는 인간의 심리적 구조, 즉 행동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으로 해석한 ‘하이브 AI 아이돌 프로젝트’에 열광하는 이유
하이브 버추얼 걸그룹 신디에잇 이미지 (출처:수퍼톤 홈페이지)

 

AI에 감정을 느끼는 이유: 의인화 편향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의인화 편향(Anthropomorphism Bias)은 인간이 비인간적 존재, 즉 사물이나 시스템에도 감정과 의도를 부여하는 심리적 성향을 말한다. 원래는 반려동물이나 로봇청소기에도 ‘얘가 나 좋아하나 봐’라고 느끼는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이제 그 대상이 고도화된 AI 아이돌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브의 AI 아이돌은 인간의 언어, 표정, 감정 표현, 팬 반응에 대한 피드백 능력까지 탑재돼 있어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 팬들은 AI가 전하는 메시지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것이 기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이 존재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감정을 부여하려는 인간 본능에서 비롯된 심리 반응이다.

 

“이미 응원했는데 그만둘 수 없어” 몰입 비용의 함정


  팬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AI 아이돌 콘텐츠를 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굿즈를 구매하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게 되면 투자한 감정과 자원이 쌓이게 된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몰입 비용(Sunk Cost Effect)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시간과 돈, 정서적 애정을 쏟았기 때문에 그만두기 어렵고, 되돌릴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이 생긴다. 특히 버추얼 아이돌은 콘텐츠 소비의 진입 장벽이 낮고 상호작용이 빠르기 때문에 몰입이 가속화된다. 팬덤에 참여한 사람은 “내가 여기까지 했는데 그냥 떠나긴 아깝다”는 감정을 느끼며 계속 소비하고, 응원하고, 존재를 정당화한다. 이는 감정적 소유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예쁘면 다 좋아 보인다: 후광 효과


  하이브가 선보인 AI 아이돌은 현실의 인간 아이돌보다도 더 정형화되고 완벽한 외모를 갖고 있다. 이는 후광 효과(Halo Effect)의 전형적인 사례다. 사람은 외모나 이미지가 긍정적이면, 성격이나 능력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AI 아이돌이 예쁘고 세련된 이미지로 만들어졌다면, 그 존재의 모든 것—가창력, 성격, 팬서비스—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팬 커뮤니티에서는 “진짜 사람보다 더 완벽하다”, “실망할 일이 없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이는 감정이 아닌 정보에 기반해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외적 이미지가 전체 평가를 왜곡하는 심리적 착각이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면 나도 끌린다: 사회적 증거


  AI 아이돌에 대한 팬덤은 혼자 시작되지 않는다.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이 응원하고, 콘텐츠가 바이럴되며, SNS에서 ‘내 최애 AI’라고 표현할 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행동경제학 개념이다.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나도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는 SNS 상의 유행과 분위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소수의 팬덤이 빠르게 대중 소비로 번질 수 있다. AI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소비자는 ‘좋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라는 전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고 느끼는’ 감정의 흐름에 올라탄다.

 

한 번 선택한 정체성은 유지하려는 편향


  사람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는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으로 설명된다. AI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선언하고, 응원 계정을 만들고, 친구와 의견을 공유한 순간, 팬은 이미 자신의 소비 성향과 정체성을 특정 방향으로 형성하게 된다. 이후 그 아이돌이 ‘AI’임을 인식하게 되더라도, 기존의 애정이나 응원의 경험을 부정하기보다 이를 정당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성적으로는 “기계일 뿐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감정적으로는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하다”는 감정을 유지하려 한다. 이 정체성 일관성은 소비자의 충성도를 더욱 강화시킨다.

 

AI 아이돌의 심리 설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이브의 AI 아이돌은 단순히 캐릭터를 예쁘게 만들고 목소리를 입힌 수준을 넘어선다. 이들은 팬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분에 반응하고, 질문에 답하며, 일정 수준의 감정 표현도 학습한다. 이러한 인터랙션은 마치 현실의 ‘아이돌과 팬의 유대’처럼 느껴지게 하며, 더 깊은 심리적 연결을 만든다. 특히 이 AI는 24시간 반응 가능하며, 사람처럼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나빠질 일이 없다. 팬 입장에서는 늘 최상의 상태로 소통하는 존재를 마주하기 때문에 감정적 안정감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설계는 인간의 심리적 만족 구조를 정밀하게 겨냥한 전략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기계에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충족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디자인된 애착’이다.

 

감정은 기술보다 먼저 반응한다


   AI 아이돌에 대한 열광은 기술적 진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 심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행동경제학은 우리가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감정·경험·환경·기대·몰입 등 여러 심리적 요소가 판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AI 아이돌이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다가올 때, 인간은 그것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따르게 된다. 이는 결코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행동경제학적 결과다.

 

AI를 사랑하는 건, 결국 인간의 본능이다.


   AI 아이돌 팬덤은 ‘기계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감정적으로 설계된 구조에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하이브의 프로젝트는 기술이 인간 심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설계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비 심리 실험이며, 행동경제학의 핵심 이론들이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AI에 감정을 느끼고, 그 존재에 애착을 갖고,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정과 판단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이 구조를 인식할수록 우리는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흐름을 모르면, 우리는 앞으로도 AI가 설계한 감정의 프레임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소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