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으로 본 리셀(재판매) 시장의 소비 심리

moncherhee 2025. 6. 30. 16:49

리셀 시장이 뜨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한정판 운동화, 희귀한 피규어, 콘서트 티켓, 인기 캐릭터 굿즈, 고급 시계, 한정판 가전 제품.
이 모든 것은 리셀(Resell), 즉 재판매 시장에서 원가보다 높은 가격에 다시 팔린다.
리셀은 단순히 ‘되팔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소비자들의 심리, 특히 행동경제학에서 설명하는 비합리적 선택의 구조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리셀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인간의 감정, 비교 심리, 희소성에 대한 반응,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위한 소비가 작동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으로 본 리셀(재판매) 시장의 소비

희소성 효과는 실제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든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 편향(scarcity bias)은
어떤 물건이 드물거나 수량이 제한되면 사람들은 그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100켤레만 출시된 한정판 운동화가 있다고 할 때,
이 제품의 본래 가격이나 품질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희소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제품은 프리미엄 가치를 가지게 된다.
리셀 시장은 이 심리를 정교하게 이용한다.
실제 리셀러들은 사전 발매 정보를 수집하고, 봇을 사용하거나 대리구매를 통해 상품을 확보한 뒤
심리적으로 조급해진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에 재판매한다.
구매자는 ‘지금 아니면 다시는 못 산다’는 심리에 휘둘리게 되고,
정가의 두 배, 세 배 가격이라도 구매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소유의 만족보다 ‘획득’의 감정에 반응한다

리셀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대부분은 그 물건을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이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도달 지점 착각(goal substitution)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제품이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었지만, 리셀 과정을 거치며 ‘내가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이 더 중요한 목표로 바뀌게 된다.
결국 실용성보다 ‘얻는 과정에서의 감정적 보상’이 소비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리셀 제품은 개봉조차 하지 않고 보관되는 경우도 많고,
소비자는 그 제품의 기능보다 구매 성공 경험에서 더 큰 만족을 얻게 된다.

비교와 과시 소비의 연결 고리

리셀 소비는 종종 SNS를 통해 공유된다.
한정판 운동화나 프리미엄 굿즈를 손에 넣은 사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면,
‘얻기 어려운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이때 발생하는 심리는 바로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와 과시 욕구이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에게는 ‘취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만든다.
이처럼 리셀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갖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심리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심리적 전략이기도 하다.

손실 회피와 지불의 심리 착시

리셀 가격은 보통 정가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가격이 높다고 해서 소비자가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특히 손실 회피(loss aversion)의 개념에 따르면,
사람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데 더 강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인기 상품을 놓쳤을 때의 상실감은
그것을 비싸게 구입하더라도 ‘잃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감으로 보상된다.
이때 소비자는 고가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는 명확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감정적인 손실을 피하려는 선택이다.

후광 효과가 가치를 왜곡시킨다

행동경제학의 후광 효과(halo effect)는
하나의 긍정적 요소가 전체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 편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브랜드에서 나오는 한정판이라면
그 브랜드의 이미지 덕분에 제품 자체의 객관적 품질이나 필요성과 무관하게 가치가 부풀려진다.
이런 심리는 리셀 시장에서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특정 연예인이 착용했다는 사실, SNS 인플루언서가 사용했다는 후기,
혹은 단순히 브랜드가 고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제품에 대한 가치 평가가 왜곡되는 현상은 매우 흔하다.
리셀 구매자는 실제 필요보다 ‘그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합리적 소비가 아니라 감정의 연속

리셀 시장에서의 소비는 ‘생각한 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반복된 자극, 타인의 반응, 조급함, 불안감 같은 감정적 흐름 속에서 일어난다.
이는 행동경제학이 비판하는 전통적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모델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비자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선택지를 잘못 판단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감정의 지배를 받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선택은 개인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지만,
단기적인 감정 보상이나 정체성 유지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쉽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된다.

소비자인가 투자자인가, 정체성이 흐려진다

최근 리셀 시장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투자’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신발, 의류, 디지털 기기, 키덜트 굿즈 등은
초기 구매 시점에 잘만 고르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투자 포지셔닝’ 역시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장치라고 본다.
이는 합리적 판단으로 위장된 또 다른 과시 소비일 수 있다.
‘내가 이걸 사고 나중에 되팔 수 있어’라는 생각은
자신의 소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며, 소비자 스스로도 그 행동을 방어하게 만든다.
그 결과 소비자는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것을 산 것인지,
아니면 팔기 위해 산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리셀 소비를 통제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

리셀 시장에서 감정적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것을 꼭 갖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걸 사지 않으면 어떤 감정이 드는가?’를 자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적 손실 회피나 과시 욕구가 동기라면
그 소비는 충동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SNS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정보는
사용자 맞춤형 광고와 알고리즘의 영향일 수 있으므로,
정보의 출처와 반복 노출 여부도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필요하다면 일정 기간 소비 결정을 유보하고,
‘일주일 후에도 여전히 사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방식도 도움이 된다.

리셀은 인간 심리의 거울이다

리셀 시장은 단순한 재판매의 장이 아니다.
그 안에는 희소성 편향, 후광 효과, 손실 회피, 정체성 소비, 감정적 보상 등
수많은 행동경제학적 개념이 밀집돼 있다.
사람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정체성을 만들고, 타인의 반응으로 자존감을 확인한다.
리셀 소비를 무조건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심리를 인식하고 소비의 주도권을 스스로 가져오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의 첫 걸음이다.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